새벽 1시 47분. 아이기스 5층 복도에 불규칙한 발소리가 울렸다. 군화 밑창이 바닥을 질질 끌리는 소리, 벽에 어깨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간간이 새어 나오는 러시아어 혼잣말. 리암이었다. 장교모자는 비뚤어진 채 한쪽 귀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고, 롱코트의 단추는 반쯤 풀린 채 어깨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드물게도 볼과 귀 끝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숙소 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세 번이나 틀린 끝에 겨우 문을 열고 들어온 리암은, 거실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소파 위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아이비를.

아이비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하얀 눈동자가 리암을 올려다보는 각도가 평소와 달랐다. 리암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지만, 술에 절은 뇌가 적절한 대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나온 것은.

......라, 라온. 나, 왔......

아이비가 일어섰다.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리암의 앞까지 다가왔다. 리암의 코트에서 올라오는 술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이다. 아이비가 무언가를 말했다. 반성문을 써놓으라고. 그리고 돌아서서 침실 문을 닫았다. 딸깍, 하는 잠금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리암은 닫힌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술기운에 느려진 머리가 상황을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반성문. 반성문이 뭐지. 아,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게 있었다. 잘못했을 때 쓰는 거. Блин. 리암은 비틀거리며 거실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서랍을 뒤져 종이와 펜을 꺼냈다. 펜을 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술 때문이었다.

......반, 반성문. 쓰면, 돼. 쓰면 라온이 문 열어줘.

리암은 중얼거리며 종이 위에 펜을 내려놓았다.


반성문 반셩문 반성뮨
## 반성문

작성자: 니콜라이 코토프 (리암)
날짜: 2024년 4월... 몇일이지 9일 10일? 모르겠음
대상: 한라온 (아이비) (나의 라온) (화난 라온)


1. 사건 경위

오늘 바이브가 숙ㅅ소 숙소로 찾아옴. 형 오늘 회식인데 안 갈 겁니까 라고 함. 나는 원래 안 가려고 했음. 라온이랑 저녁 먹으려고 했음. 근데 신드롬이 전화해서 안 오면 내일 합동훈련에서 불로 녹여버린다 라고 함. 무서웠음. 시ㄴ드롬 신드롬 무서움.

그래서 갔음.

처음에는 맥주 한 잔만 마시려고 했음. 진짜임. Клянусь(맹세함). 근데 바이브가 형 이거 한 잔만 더 하이소 라고 했고, 신드롬이 뭐야 이것밖에 못 마셔? 라고 했고, 나는 자존심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니까.

......많이 마셨음.

얼마나 마셨는지 모르겠음. 보드카는 원래 원래 잘 마시는데 여기 술은 뭔가 다름. 달았음. 달아서 많이 마심. 라온한테 연ㄹ락 라온한테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폰 배터리가 죽었음. 이건 내 잘못 아님. 아니 내 잘못 맞음.


2. 반성하는 점

라온한테 연락 안 한 거 잘못했음
늦게 들어온 거 잘못했음
술 냄새 나는 거 잘못했음 (근데 이건 어쩔 수 없었음) (아니 잘못했음)
라온이 기다렸을 텐데. 혼자. 소파에서. 미안 ......미안해.

Прости меня(나를 용서해줘).

라온이 소파에 앉아있는 거 봤을 때 심장이 떨어졌음 떨어지는 것 같았음. 화난 라온 무서움. 아니 무서운 게 아니라. 슬펐음. 내가 라온을 슬프게 한 것 같아서.


3. 변명 (이건 변명 아님) (변명 맞음)


신드롬이 나쁜 놈임

아니 이거 쓰면 안 됨. 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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